용산참사 당시 경찰청장 김석기, 그의 입장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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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요약

2009년 용산참사가 있었다. 사건의 시작은 2006년 용산4구역 재개발사업 때문이었다. 주거세입자나 임차상인에 대해서 보상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2008년 겨울부터 강제철거가 되기 시작했다. 보상 문제와 생계 문제가 해결안된 철거민들은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건물에 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화염병과 골프공이 들려있었다. 과격한 시위에 경찰은 진압작전을 시도했다. 대테러를 위해 준비된 경찰특공대도 포함됐다. 진압을 위해 물대포를 뿌리고 압박했다. 철거민들은 건물의 옥상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골프공을 새총으로 쏘아보냈다. 경찰은 컨테이너에 특공대를 넣고 건물 옥상으로 들어올려 이동시켰다. 철거민은 다가오는 컨테이너를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이렇게 실랑이하는 와중에 옥상에 흘러 퍼져있던 '신나(기름)'에 불이 옮겨 붙었다. 그리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찰 1명과 5명의 철거민이 그 희생자였다. 과연 누구에게 죄가 있는가.


당시 경찰청장인 김석기의 인터뷰를 살펴보기 전에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싶다. 과연 경찰에 잘못이 있을까? 철거민에게 잘못이 있을까? 총 30조원에 달하는 뉴타운 재개발사업을 보상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농성하고 있는 철거민들의 집을 강제철거 시작한 '누군가'의 잘못이 아닐까?






2009년 초 겨울에 있었던 뜨거웠던 참사. 다시 밝혀지다.


김석기 의원 용산참사 관련 인터뷰 기사(▶링크 읽어보시길)

인터뷰를 읽고 든 첫 생각이 있다. 바로 나치 독일 전범인 아이히만과 그를 보고 악의 평범성을 생각한 한나 아렌트였다. 물론 상황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얼핏 이사람들이 생각나더라. 뭔가 공통점이 있으니 생각난거겠지, 하지만 글재주가 없어서 이를 풀어서 설명할 재량이없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일단 김석기 의원은 현재 진상조사위원회가 경찰의 강제진압이 문제가됐다는 주장에는 반대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희생은 직접적으로 시위자의 화염병때문에 발생한 것이었고, 그들의 시위로 인해 거리의 차량과 보행자들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었다고한다. 고로 자신이 지시한 진압행위는 절대 문제 될 게 없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그런 상황이와도 그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거라고 말했다.



사실, 내 생각에 진압과정만 놓고보면 경찰측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상황이 저렇게까지 악화된 '과정'에 문제가 있는것이지 진압작전은 문제없었다. 시위대가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도로에 던지며 농성을 하고 있는데 어느 '공권력'이 그들을 그대로 둔단 말인가.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한채로 저런 대립구도로 간건 정말 안타깝지만, 저 상황에서 경찰이 선택할수있는 선택지는 딱 한개뿐이였다. 바로 진압이다. 그렇지않으면 국민에게 공권력, 경찰의 신뢰도가 어떻게 되겠는가. 김석기 의원의 인터뷰대로 경찰로서 할수있는 일을 했기에 이 점에 대해선 비난하지 말아야겠다.

(단, 경찰의 여론조작에 대한 해명은 해야할것이다)


그렇다고 철거민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보상문제도 제대로 해결받지 못한채 자신의 터전이 '강제철거'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들한테도 선택지는 한 개밖에 없었다. 공권력에 제대로 말 한 번 못해보고 터전을 빼앗기느니 '농성'을 해서 제대로 일을 벌려보겠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겠다. 그들이 선택한건 단지 멀리까지 들릴수있는 '목소리'였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경찰도 잘못이 없고 철거민도 잘못이 없다. 그럼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상황을 그렇게까지 몰아갔는가. 경찰도, 경찰청장 김석기도 아니고 철거민도 용산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범인일까. 알고있으면 댓글을 달아달라.


30조원에 달하는 뉴타운을 짓기위해 강제철거를 서두른 '그들은' 누구였을까. 누가 지시했을까. 누가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을수있었을까.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수밖에없다. 


글을 마치기전에 분명한 내 의견은 당시 경찰의 진압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설령 컨테이너를 올려보낸게 부적합한 실수였다고 지금에서야 판단되더다도, 당시에는 진압의 한 과정이다. 그리고 농성민들의 농성도 그들의 최후의 수단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김석기의원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당시 여론조작을 지시한 청와대에 대한 해명일것이다.



ps

혹시 제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점이나 틀린 글이 적혀있다면 댓글로 수정을 요구해주십시오. 바로 수정하고 추가 글로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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