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장편소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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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장편소설 리뷰

세계문학 전집 중에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맛이 쏠쏠하다. 어느 책을 읽어도 항상 만족감을 주는 책들인 것 같다. 부족한 독서량이지만 조금이라도 그 맛을 진지하게 느끼고 싶은 마음에 읽은 책. 간단하게 리뷰를 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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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을만한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저자, 볼테르에 관해서

 볼테르는 1700년대 사람이다. 볼테르는 1726년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맞이한다. 그 사건은 귀족과의 한바탕 싸움이었다. 한 귀족이 그의 하인을 시켜 볼테르를 구타시킨 것이다. 이에 맞서 볼테르는 결투를 신청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귀족과의 말썽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를 투옥시켰다. 그리고 망명을 조건으로 볼테르를 석방하하였다.

 이사건으로 인해 볼테르는 계급에 대한 불합리를 느끼었을 것이다. 그 후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신념과 사상의 자유를 더 갈망하게 되었고. 영국의 산업발달을 보며 실용주의적 성향이 생겨났다.

 후에 어느 한 영지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주민을 지키며 소소하게 살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그의 지적 향연은 계속 되었고 많은 작품을 남기었다.



·볼테르는 몇살에 이책을 썼을까

 1758년 64세에 집필을 시작했고 1759년 65세에 출간을 했다. 년도는 바뀌었지만 5개월정도의 집필기간이 있었다. 꽤 나이가 있을 때 집필한 책이라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는 그의 연륜있는 비판의식과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들어있다.



·낙관주의는 무엇인가

 책 제목에 낙관주의가 들어가 있는 만큼, 낙관주의는 이 책에서 빠지지 않는 한 소재이다. 그전에 낙관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낙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 태도 및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낙관주의를 생각할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현실에 무감각하고 이상만을 쫓는 이상주의자. 부인할 수 없는 낙관주의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이런 낙관주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낙관주의는 오히려 현실에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헤쳐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낙관주의는 현실적 낙관주의라고 부르면 좋겠다.

 현실적 낙관주의는 현실의 어려움을 정확히 직시하면서도 '그럼에도' 나의 목표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즉 근거없는 비현실적인 희망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목표를 향해 끝없이 노력하면서도 결과에 대한 강박을 가지지 않으며 과정에 진실로 몰입할 수 있다. 아마 이 과정에 대한 몰입은 목표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있기 떄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쩃든 낙관주의는 보통 비관주의보다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스스로 낙관주의의 개념을 정해보는게 좋을 듯 싶다. 이러한 ~주의는 우리의 가치관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


·줄거리 (나름 스포가있다)

 주인공은 캉디드이다. 캉디드는 순수하고 세상 모르는 철학가이다. 그의 스승인 팡글로스의 철학을 무척 신봉한다. 팡글로스의 철학은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낙관주의이다. 이 철학은 그 당시 18세기 라이프니츠유의 낙관주의(최선의 세계에 대한 신봉적인 믿음)과 같다. 볼테르는 순수한 캉디드의 순수한 철학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내내 깨뜨릴려고 한다. 이 방법을 통해 볼테르는 현실세계의 라이프니츠유의 낙관주의를 공박하는 것이다.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서, 캉디드는 부모가 없는 고아로서 독일의 아름다운 성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성의 남작의 동생 '퀴네공드'와의 사랑으로 인해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후 캉디드는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닌다. 하지만 전쟁에서 참혹한 살해 현장을 보고 실망을 느끼기도 하고 그가 성장했던 '성'의 남작과 퀴네공드 공주, 그리고 팡글로스 선생의 참혹한 죽음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은 죽지않고 이야기상에서 계속 여차여차해서 살아나게 되지만..) 그리고 계속해서 이 세상의 불합리와 캉디드의 낙관주의가 부딪히게 된다.

 캉디드는 퀴네공드와의 만남이 최선의 세계였고 낙관주의의 결과였다. 그러나 퀴네공드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속에서 퀴네공드는 못생긴 추녀로 변해버리고 만다. 세상의 부정은 그녀를 까탈스럽고 까만, 피부가 축 쳐진 여자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마지막에 캉디드는 그녀를 만나지만 이미 그녀의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린 후였다. 하지만 착한 캉디드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다. 

 이것은 낙관주의의 결과이고 최선의 결과인가. 캉디드는 같이 사는 식구들과 끝없이 의견을 나눈다. 그러나 그는 지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런 마지막 장면을 선사한다.



팡글로스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한 죄로 엉덩이를 발길로 차이면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또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지 않았더라면, 또 남작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또 엘도라도에서 가지고 온 양들을 모두 잃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캉디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씁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캉디드의 낙관의 변화과정

 나는 책을 읽을 때 캉디드의 낙관이 어떻게 변하는가 걱정 반 궁금한 반으로 읽었다. 사실 말만 이리저리 바꾸면 낙관주의는 어디에다 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캉디드의 세상은 너무 불행했기 떄문에 낙관주의가 언제 깨질까 하는 재미로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런 불행 속에서 낙관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낙관주의가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캉디드는 "이렇게 힘들어도 선을 베푸는 사람이 있네요! 역시 최선의 세계입니다"라며 끝내 낙관주의를 유지한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말로 인해 많은 여운이 남았다.

 

·글을 마치며

 철학소설이라지만 재미있다. 순수한 약자는 언제나 깊은 몰입을 선사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 싶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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